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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머 그 다음 이야기 - 6점
임백준 외 지음/로드북

얼마전에 나온 신간이며, 프로그래머들이 가볍게 읽어보기 딱 좋은 책이다.
6명의 프로그래머에 대한 에세이들이 있는데 1번타자인 임백준씨의 글을 가장 재밌게 읽었다.

잠시동안 관리자의 역할을 맡게되면서 프로그래밍 실력이 떨어질까봐 걱정하는 마음.
옆의 똑똑한 동료들과 경쟁을 하고 함께 토론을 하면서 실력을 재보고, 또 그들을 도저히 이길 수 없겠다는 한계를 느끼며 좌절하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잘 썼다. 이런 것들은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을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좋아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다.

미국 회사들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아, 그런데 임백준씨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들이 너무도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정말 그런가? 나는 비록 경력이 5년 정도 밖에 되지 않고 회사도 2군데 밖에 다녀보지 않았지만 여태까지 그런 것은 느껴보지 못했다. 뜨거운 여름날에 와이셔츠가 온통 땀으로 쩔어서 영업하러 나갔다가 잘 안풀리고 들어와서 욕이나 실컷 얻어먹는 세일즈맨들에 비하면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서 커피 한잔 하며 코딩하는게 얼마나 편안한가.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하는 일을 더 고되고 힘들게 포장해서 자랑스럽게 말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 우리 부대군기는 진짜 빡셌어.
- 요즘 어린 애들은 버릇이 없어. 우리 때는 그런거 상상도 못했는데.
- 니가 몰라서 그렇지 우리 부서가 얼마나 힘든데.

프로그래머로서 스트레스를 받는 순간이 있다면 기능을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구현해낼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의 초조함과 동료와 기술적으로 의견 충돌이 발생했을 때, 그리고 심각한 버그를 보고 받았는데 문제가 잘 안 풀릴 때 정도이다.

다른 직종에서 일을 해본적은 없기 때문에 비교해서 생각해볼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프로그래머가 못해먹을 직종은 아닌 것 같다. 진짜 못해먹을 일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임백준씨의 에세이는 아주 즐겁게 읽은 반면에 다른 에세이들에서는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 책에 나오는 프로그래머들은 열심히 살아왔고 좋은 프로그래머들임에는 분명하지만 옆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프로그래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프로그래머로써 무언가 큰 것을 이룬 사람들처럼 자서전을 쓰듯이 글을 썼기 때문에 재미가 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무언가 큰 것을 이룬 국내 최고의 프로그래머들을 불러다가 어떻게 공부했는지 에세이를 써보라고 하면 그것도 참 재밌는 책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