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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5 2010.02.13
삼성을 생각한다 - 8점
김용철 지음/사회평론

원래 이런 종류의 책들은 집근처 도서관에 신청한 뒤에 빌려서 보는 편인데, 다른 블로그들에 쓰여진 리뷰들을 읽다보니 너무 재밌을 것 같아서 참지 못하고 주문해버리고 말았다. 알라딘은 책을 주문하면 바로 다음날 배송이 되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든다.

나는 평소에 정치와 경제에 전혀 관심이 없고 기반지식 또한 없어서 책을 읽는데 애를 먹은 부분들이 많다. 예를 들어 신정아, 한나라당 차떼기. 뭐 이런 말들이 나올 때마다 예전에 한번쯤 들어본 것은 같은데, 당최 무슨 일이었는지 하나도 모르겠는 것이다. 이런 궁금증들은 위키피디아에서 풀 수 있었다. 그 곳에서는 원하는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나는 위키피디아를 정말 너무너무 좋아한다.
이미 정치, 경제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면 당시 사건들을 떠올려 보면서 이 책을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삼성의 비리들을 고발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고, 삼성의 장점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없다.
책이 상당히 두꺼워서 읽는데 애를 먹었는데,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부분이 많았다.
처음에는 충격적인 내용들에 푹 빠져서 미친듯이 재밌게 읽다가, 2/3 이상 읽다보니 점점 무디어져서 집중력이 떨어져버렸다.

이 책에서 다루는 주인공은 이건희, 이학수 그리고 김인주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그들의 얘기가 나올 때 가장 집중이되고 재미있다.


나는 재벌들의 생활과 생각은 일반적인 사람들과 어느 정도나 다를까 궁금했었다.
예전에 누군가가 정몽준씨에게 버스비가 얼만줄 아냐고 물어봤는데, 70원이라고 대답했다길래 경악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설마 싶었는데, 이 책을 읽고나니 그럴수도 있었겠구나 싶다.
이건희의 부인인 홍라희씨는 100만원 짜리 옷을 대체 어느 누가 사가겠냐라는 말을 했었는데, 우리의 생각과는 반대로, 그런 싸구려 옷은 아무도 안사간다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씀씀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버스비 같은 아주 작은 돈의 단위에 대해서는 짐작 조차 못하는 것이다.

또한 이건희의 생일 파티와 그의 전세기 내부 광경에 대해 쓴 장에서는 그들이 일반인과(그리고 2류 부자들과도) 얼마나 다른 세상에 살고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물론 돈을 많이 벌고 많이 쓰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쓰는 모든 돈은 그들의 돈이 아니라 회사 돈인 것이 문제라고 김용철은 지적한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살짝 계산해봤는데 지금까지 삼성 제품을 산 돈 중 한 5만원 정도는 그들의 비자금으로 들어가서, 이건희가 생일날 마시는 1000만원짜리 와인의 한 모금 정도 기여했겠구나 싶었다.

이건희와, 이학수 그리고 김인주를 보면서 군대 시절 생각이 자꾸 떠올랐는데, 그것은 이 책에 나타난 삼성의 모습이 군대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삼성공화국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것은 이런 이유일 것이다.

이건희는 별 5개(원수)
이학수는 별 4개(대장)
김인주는 별 3개(중장)
김용철은 별 1개(준장)

아마 이 정도가 아니었을까?

이건희는 거의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데, 출근한 날에는 그가 탄 엘레베이터가 중간에 멈추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을 써야만 한다.
군대에서 사단장급을 맞이하게되면, 사병들은 길거리에 먼지하나 없이 청소하고 간부들은 뭐가 그리 분주한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정신나간 사람들처럼 뛰어다녔었는데 아마 그 광경하고 참 비슷했을 것이다.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는가?

나머지 일반 임원들은 영관급이다(대령, 중령, 소령)
예를 들어 예전에 진대제사장 같은 경우는 중령 정도나 되었을 것 같다.
윤종용 사장 정도나 특별히 2스타 정도의 장관급 대우를 받았을 것 같은데, 김용철이 그에 대해서는 나쁜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깨끗하고 강직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책 중에, 김용철이가 양심고백이후 이학수가 문자메세지를 보내왔는데, 김용철이 그조차 언론에 공개해버려서 이학수가 마음을 꽤나 상했을 것이라며 살짝 미안해 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무슨 내용인지 궁금해져서 찾아봤다.

"김 변호사 우리 서로 좋았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나는 김 변호사와 이렇게 될 만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나서 뭐든지 풀어보면 서로 유익할 것입니다. 긍정적인 판단을 기대합니다."

번역하면 이쯤 되겠다.

"이보게, 예전에 내가 당신을 얼마나 아꼈고, 또 날 인간적으로 잘 따르기도 했지 않는가. 돈은 원하는대로 줄테니 이쯤에서 입 다물고 끝내자. 부탁이다."

실제로 김용철의 아들이 결혼할 때 이건희와 이재용은 100만원씩 축의금을 낸 반면에 이학수는 500만원을 냈는데, 당시 둘의 관계를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위키피디아에 보면 책의 내용들이 좀 더 자세히 기록되어져 있다.



이건희를 생각하면서 김우중이라는 예전 대우 회장 생각이 떠올랐다.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라는 책은 20년동안 읽히고 있는 그의 스테디셀러인데,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열정을 가져다주는 아주 훌륭한 책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 중 가장 감동적이고 열정적인 자서전이었다.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책 내용 중에 그는 자신이 죽고나면 젊은이들에게 깨끗한 기업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말을 특별히 많이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이미 그렇게 되기는 틀려버린 것 같다.
만일 그가 이것을 보게 된다면 그는 펑펑 눈물 흘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상황이 그 멋진 남자를 이렇게 변하게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 많은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사람이 한 순간에 이렇게 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건희 역시 훌륭한 기업가라는 얘기를 듣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린 것 같다. 이제부터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그의 평판을 다시 좋게 돌리기는 힘들 것이다.

어쨌거나 이 책을 사서 아주 재밌게 읽기는 했다만, 이 책이 좋은 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냥 재밌는 책일 뿐이다. 또한 나는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다 믿지도 않는다. 이런 류의 책들은 과장이 섞이기 마련이다.

진대제는 똑같이 삼성 임원을 지내고 나와서 젊은이들에게 열정을 불러 일으키는 훌륭한 책을 쓰는데, 이 책은 우리들에게 에너지를 건네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에게 채찍을 가하는 이 책이 전혀 가치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만, 나는 그래도 진대제의 책이 훨씬 긍정적이고 읽을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삼성은 정말 대단히 큰 기업이며, 내가 좋아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그들은 남들을 따라잡는 것에 아주 익숙하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서 빠른 속도로 성장한 후 1등까지 따라잡아 버리는 것이 바로 그들의 방식이다.
반면에 그들은 남들보다 먼저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지는 못하는데, 이런 것들이 바로 이렇게 군대처럼 돌아가는 그들의 조직문화 때문인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

좋게 말하면 '일사불란하게 집중해서 움직이는 조직' 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할 썩어빠진 조직' 이다.